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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키호테가 되지 못한 슬픈 삐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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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학림 스트리트캐주얼 ‘FLUX’ … (fpost@fpost.co.kr) | 작성일 2020년 01월 28일 프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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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2월, 신세계이마트는 정용진 부회장이 직접 홍보에 열을 올릴 만큼 공격적인 마케팅을 벌여 온 ‘삐에로쑈핑’을 론칭 1년 6개월 만에 중단했다. 

 

쉽게 설명할 수 없는 실패의 원인


이마트는 삐에로쑈핑의 실패 원인을 ‘임대료 부담’ 탓으로 돌렸고, 이를 분석하는 여러 매체들은 각각의 의견을 내놓았는데, 그 중 몇 가지 대표적인 실패 원인 분석들을 나열해 보자. 임대료가 비싼 지점에 출점했다는 것, 장기적인 마케팅의 부재, 가격메리트의 부족, 복잡한 동선이 한국 정서와 맞지 않았다는 점 등을 이유로 삼았다. 

 

하지만 그런 것들만으로는 삐에로쑈핑의 실패를 설명할 수는 없다. 전형적인 수박 겉핥기 수준의 분석이다. 돈키호테는 도쿄에 23개의 매장을 가지고 있으며, 그 중에는 긴자, 롯폰기, 시부야 등 삐에로쑈핑이 입점 되어있는 지역보다 더 비싸면 비쌌지, 결코 싸지 않은 지역들도 존재한다. 가격 역시 돈키호테는 100엔 짜리부터 수 천 만 원짜리까지 다양한 가격대의 제품을 판매하는 곳이다. 

 

다이소나 ‘100엔샵’과 콘셉트 자체부터가 다르다. 따라서 단순히 ‘삐에로쑈핑의 몇 몇 제품들이 돈키호테보다 비싸더라’를 실패의 주된 원인으로 삼는다면,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게 된다. 돈키호테의 동선을 그대로 베낀 삐에로쑈핑의 동선을, 한국인 정서와 맞지 않는다고, 그래서 실패했다는 의견 역시 어불성설이다. 

 

삐에로쑈핑이 처음부터, 철저하게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가장 결정적이면서 (아마도) 아무도 정용진 부회장에게 말하지 않았던 것은, 다름 아닌 ‘돈키호테의 본질’이다. 

 

보지 못한 돈키호테의 본질


아니,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돈키호테의 본질을 ‘보물찾기’로 규정하고, 이를 철저하게 벤치마킹 하려고 한 것으로 보아서는, 이론적으로는 어느 정도, 기왕 하는 김에 제대로 따라하려고 작정했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을 것도 같다. 

 

다만, 삐에로쑈핑을 기획한 이들은, ‘보물’의 개념을 단순히 시중에서 비싸게 파는 제품을 좀 저렴하게 찾을 때 사용하는 표현이라고 이해했거나, 청계천에 물고기 풀어놓듯이 군데군데 값비싼 미끼를 던져놓고 그것들을 ‘보물’이라고 해석했으리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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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키호테>

 

 

이는 완전히 잘못된 생각이다. 우선, 대한민국에서 보물찾기는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보자. 필자가 도쿄를 가면 항상 들르는 가게들이 몇 군데 있는데, 그 중 하나는 ‘만다라케’라는 곳으로 이 곳은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등, 일본 ‘오타쿠 문화’의 정수인 분야를 두루 다루는 곳이다. 

 

즉 이 곳에 가면, 만화책이나 음악CD 부터, 오래된 게임기나 소프트웨어, 피규어나 장난감 등을 구할 수 있는데, 그 컬렉션은 가히 놀라울 정도이다. 

 

새 것을 과감히 받아들이는 한국 문화


50년도 더 전에 만들어진 아톰 장난감부터 수 십 년 된 가면라이더 PVC 피규어는 물론이고 필자도 가지고 있었던, 가보처럼 소중하게 다루던 금속으로 만들어진 마징가 Z까지 아날로그 감성을 비틀어 짜내는 빈티지들로 가득하다. 

 

그리고 거기서 발견한 것 중 무엇보다 놀랐던 것은, 수 십 년 전에 나온 것으로 추정되는, 한국에서 만들어진 ‘아카데미 완구’의 프라모델을 발견한 것이다. 그것도 필자가 초등학교 2~3학년 때 몇 번 씩이나 사서 만들고 도색을 하던, 바로 그 시절의 빛바랜 종이 포장 그대로, 투명한 비닐에 포장되어 ‘2500’이라는, 당시 한국 가격의 50배가 넘는 1만엔(한화 약 10만원) 정도의 가격을 붙인 채로. 

 

물론 ‘만다라케’만 그런 빈티지들을 취급하는 것은 아니다. 일본의 빈티지 시장은 우리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거대한데, 가장 근본적인 차이는 일본인과 한국인의 라이프스타일과 밀접하게 관계가 되어 있다고 생각된다. 

 

간단하게 생각 해 보자.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 3살이나 4살 때 가지고 놀던 로봇 장난감들, 그 때 사용하던 밥그릇이나 수저, 유모차. 전부 언젠가 버리지 않으셨는지? 

 

아직까지 7살 때 가지고 그렇게 조립하던 메칸더V나 에어울프 프라모델들을 가지고 계신 분이 과연 몇이나 되실지 생각해보면, 근본적으로 한국 시장과 일본 시장이 얼마나 다를지 쉽게 알 수 있다. 

 

한국은 끊임없이 낡은 것들을 부수고 다시 지어가면서 여기까지 온 나라이고, 사람들 역시 새것을 좋아하고 빠르게 변화하는 것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렇게 빨리 세계 어느 나라보다 발전된 모습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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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다라케.>

 

버릴 줄 모르는 일본 문화


반면 일본은, 생각보다 훨씬 보수적이고 변화를 두려워한다. 버릴 줄도 모르는데다 심지어 모으는 것을 좋아하는 성향마저 있다. 그래서 일본은 젊은이들의 머리 스타일과 옷 입는 스타일마저 30년 전과 별 차이 없을 정도로 바뀌는 것이 없고, 그만큼 뒤처지는 대신, ‘보물’들이 아직까지 살아있을 수 있는 것이다. 

 

몇 년 전, 신오쿠보의 돈키호테에서 한국 돈으로 2천 만 원 정도 되는 롤렉스 시계가 진열 되어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수많은, 아무도 안 살 것 같은 상품들 중간에 떡하니 롤렉스 시계가 전시되어 있고, 그 제품 설명은 일본어와 한자가 섞여 있어서 해석을 정확하게 하지는 못했지만, 수 십 년 전에 만들어진 한정판 롤렉스 시계였다. 

 

‘보물’은 이런 것들을 말한다. 분명히 일본의 누군가는 몇 천 만원을 주고라도 이 시계를 가지고 싶어 하던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그에게 이 시계는 이제 세계에 몇 개 남아 있지 않을 ‘보물’인 셈이다. 

 

또 누군가는 1964년 도쿄 올림픽 기념주화를 애타게 찾고 있었을 것이다. 또 누군가는 1983년 도쿄 디즈니랜드가 개장하던 날 구매했던 입장권이나, 그 날 디즈니 스토어에서 판매 되었던 개장 기념 미키마우스 시계를 죽도록 갖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것들 전부는 아니겠지만, 돈키호테를 뒤지다보면, 마치 어느 날 바다에서 발견된 해적선 선장실에 있는 금화 같은 ‘진짜 보물’같은, 그런 것들을 마주치게 된다. 싸고 비싸고를 떠나 다른 가게에서는 결코 하지 못할 그 짜릿한 ‘보물찾기’가 바로 돈키호테가 이렇게까지 성공할 수 있었던 ‘본질’인 셈이다. 

 

한국에서 실현 불가능한 일본의 미덕


하지만 돈키호테에서나 가능한 그 보물놀이는, 조금 낡으면 갖다 버리고 새 것으로 바꾸고, 끊임없이 앞으로 전진 하는 것만이 미덕인 한국에서는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동네 문방구가 수 십 년씩 대를 물려가며 유지되고, 그런 문방구가 없어지면 그 안에 있던 ‘오래된’ 것들을 따로 모아놓고 파는 것이 일상인 일본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뭐, 설사 삐에로쑈핑에서 1988년 서울 올림픽 때 판매하던 호돌이가 자개 위에 새겨진 시계를 갖다 놓고 판다고 치자. 1993년 대전 세계 박람회의 마스코트인 꿈돌이가 새겨진, 100개 한정 순금 담배 케이스 몇 개를 판매한다손 치자. 그 수요가 한국에 있기는 한가? 

그것들을 보물로 여길, 그런 컬렉터가 한국에 몇이나 되던가? 

 

그러니까 애초부터 삐에로쑈핑은, 외형적으로만 돈키호테를 따라했을 뿐, 돈키호테가 가지고 있는 아주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문화코드는 전혀 고려하지도 않고 쉽게 생각하고 접근한 셈이다. 당연히 잘될 리가 없다. 

 

이미 저렴한 제품이라면 온라인으로 얼마든지 구할 수 있고 동네마다 널린 것이 대형마트인 한국에서, 단지 좀 저렴하다고, 단지 조금 신기하다고 지갑을 여는 바보 같은 소비자는, 적어도 한국에는 거의 없다. 온라인으로 검색어 몇 개만 설정해도 10분 내로 금방 찾을 수 있는 것들을 굳이 삐에로쑈핑을 찾아야 할 필요가 애초부터 없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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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에로쑈핑의 실패에서 배울 점


삐에로쑈핑의 실패를 패션 쪽에 적용시켜보아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디자이너 브랜드들을 제외한, 특히 대기업이 만든 브랜드들 중에 단 하나라도, 어느 브랜드를 따라 만들거나 비슷하게 만들지 않은 브랜드가 있었던가? 

 

삐에로쑈핑이 돈키호테의 ‘9조원’에 이른다는 연 매출만을 보고 ‘우리도 할 수 있다!’라고 알 수 없는 자신감으로 돌격했듯이, 한국의 브랜드들도 폴로를, 탑샵을, 유니클로를 따라서 만들었거나, 비슷한 매출을 올리면 된다는 생각으로 만들어진, 태생적인 한계가 있지 않던가? 

 

하긴, 그 돈 많은 대기업이 유니클로를 따라잡겠다고 만든 브랜드가 한다는 짓이, 비교도 안 되는 작은 디자이너 브랜드를 가져다 베끼는 수준이니 앞으로도 이들의 활약은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예상이 되고도 남는다. 그리고 그 결과가 결국은 삐에로쑈핑과 전혀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 역시 너무 쉽게 해볼 수 있다. 

 

봉준호 감독이 아카데미 6개 부문 후보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에는 그 사이의 그리고 지금도 계속되는 많은 영화인들의 실패와 노력이 분명히 있었고, 방탄소년단이 이만큼 주목받을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 속에는 상습적으로 이어져 온 표절문제부터 시작해, 끊임없이 새로운 틀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 분명히 있어왔다. 

 

노력해야할 때 무얼하고 있는가


그들이 일본음악을, 미국영화를 베끼는 것으로 시작해서 한국 냄새가 풀풀 나는, 새로운 카테고리로 자리 잡아 온 그 시간동안, 패션 업계는 과연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 또 전례 없이 휘몰아치는 패션 생태계의 변화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은 하고 있는지 의문스럽다. 

 

영화계가, 대중 음악계가, 아프고 괴로운 과도기를 거쳐 근사한 형태를 다듬어 놓는 동안, 패션계에서는 어디다 내세웠을 때 부끄럽지 않은 패션 브랜드가 ‘단 한 개도’ 없는 진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이제는 각자의 답을 내놓아야 할 때이지 않을까? 

 

아, 혹시 이 다음에 베낄 것들을 구하기 위해 해외 출장 중이셔서 그런 것들을 생각할 겨를이 없으실 런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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